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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서는 습관 떠드는 습관
  Author : 황성혁     Date : 03-12-19 13:55     Hit : 19974    
 
 
나서는 습관 떠드는 습관
 

88 올림픽 때였다. 세계 단거리 챔피언이었던 미국선수가 김포공항으로 입국하고 있었다. 의례 그렇듯이 기자들이 덤벼들었고 그의 길을 막았다. 그는 험악한 얼굴을 지으며 떼를 썼다.

"당신들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나는 미국으로 돌아갈거야."

그때 모두는 빈정거렸다.

"누가 말려, 가지 그래. 제가 우리 좋으라고 오는 것인가, 제 좋을려고 오는 것이지."

9.11 테러가 난 뒤 이태원의 미군기지 입구에는 기지로 들어가는 차가 몇십리씩 줄을 지어 있었다. 검문이 강화되어 차량통행이 지연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 앞을 지나는 다른 차량들까지 끝없는 지체에 시달려야 했다. 한 한국 운전자가 미국 초병에게 불평을 하였다. 기지로 들어 가는 차들은 단속을 하더라도, 지나가는 차들은 좀 다니게 해야 할 것 아니냐는 지극히 할만한 불평이었다. 초병은 험악한 얼굴로 부르짖었다.

"우리는 당신들 불편 쯤 신경쓰지 않아 (WE DON'T CARE)."

그때 우리의 반응은 이랬었다.

"너희 동네나 가서 그래라, 이 불쌍놈들아".

그들은 그런 국민이다. 단거리 육상선수가 '올림픽 치르시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라는 말 한마디를 했거나, 그 초병이 '불편을 끼쳐서 미안합니다. 며칠만 참아 주십시오.' 라고 여유를 보였다면, 우리나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편했을 것인가. 대통령으로부터 거리를 지나 다니는 평범한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옛날 서부 총잡이들 시대로 부터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요즈음 온 세계 사람들의 입맛을 떨어지게 하고 있다. 북한을 몰아 부치는것, 이라크에 대한 극단적인 위압, 또 그런 짓과 관련해서 주변의 나라들을 자기들 입맛대로 들볶아 대는 행패 때문이다. 미국사람 자신들도 그들이 별로 잘 받아들여 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고칠 수 없는 그들의 문화이며, 그들 삶의 방식인 것같다.

두명의 여중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 꽃같은 생명을 잃었다. 사과도 하고 그에 알맞는 조치를 취할만 했건만 그들은 그들 방식대로 밀어 부쳤다. 그들의 군사법정은 장본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그들을 빼돌려 미국으로 귀국시켜 버리고 말았다. 독극물 방류로, 북한에 대한 오만 방자한 으름장으로, 그와 관련한 우리정부에 대한 불손한 고압으로, 그렇지 않아도 상할대로 상한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그 사건은 사람들의 상한 마음을 터뜨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터지기 전에 몇번씩이나 쓰다듬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들의 오만으로 그 기회를 놓쳤었다. 국민들의 슬픔은 곳곳에서 여러형태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그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없는 촛불 모임이 시작되었다. 월드컵의 열기를 불태우던 바로 그 자리에서 비장하고 아름다운 모임은 계속 되었다.

"여기 나오지 않으면 한국사람이 아닌 것 같아 나왔어요."

어느 소녀의 말이었다. 그것은 시끄럽지 않고 휘황찬란하지 않았지만 조용한 만큼 무거웠고 부드러운 만큼 거역할수 없는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예상보다 심각한 사태의

발전에 늦은 감은 있으나 미국측이 변화를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의 한국정책에 한국인들의 정서를 반영하리라는 징조를 보이고 있었고 한국당국도 사태를 추스리기 시작했다. 그때 엉뚱한 일이 일어났다. 우리나라 시민대표란 사람들이 미국을 방문한 것이다. 미국 국회의사당으로 유엔본부로 그리고 백악관까지 찾아가서 한민족의 얼을 대변하고 국민의 슬픔을 알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거기 경찰과 부딪쳐서 한사람은 구속까지 되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찰관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 던지는 것까지 습관이 되었달수 있지만, 거기서 까지 경찰과 몸 싸움을 벌였다는 것이다. 거기는 경찰에게 위협적인 몸짓만 해도 경찰이 총을 쏠수 있게 되어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신문 방송들은 그것을 또 한건의 열사들의 탄생인것 처럼 보도하기 시작했고, 우리의 철딱서니 없는 대통령후보 선거관계자들까지 같은 장단을 치고 있었다.

세계 어느나라에서나 반미와 미군철수를 외치는 것을 심심찮게 보아왔다. 특히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그것으로 업을 삼듯 일상적인 시위를 하는 사람도 많다. 이번 한국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때는 그 규모가 커지고 그 항의도 더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나라 민간인들이 미국에 가서 대통령 보자, 유엔사무총장 보자는 예를 보지 못했다. 그런 일은 전문가들만이 할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보기 싫은 면도 있지만 예쁜 얼굴들을 많이 갖고 있다. 자동차도 전자제품도 많이 사주는 나라이고, 젊은이들이 최신의 학문과 기술을 배워 오는 곳이며, 미우나 고우나 미군의 주둔은 그 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확인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미국을 방문한 사람들은 법조인도 아니고 행정가도 아니며 더구나 외교관도 아니다. 이런일에 나설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우리의 대표라고는 백번 고쳐 생각해도 인정할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죽은 아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미군지위협정을 수정하는데 부담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몇 년전 김우중 회장 체포팀의 유럽방문을 기억한다. 검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유럽의 큰 도시들을 오가며 참담한 수모만 당했던 일을, 대우자동차의 회생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대우 자동차의 수출길만 막아 놓고 돌아왔던 일을, 자격없는 사람들의 충동적인 행위의 결과를 지금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큰일이건 작은일이건 뛰쳐 나서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진 본능인 것 같다. 그러나 일이 있을때마다 뛰쳐 나서는 습관은 또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가. 깊이 인내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며 일의 본질을 소화해서 일을 할수 있는 사람들에게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얼마나 보기 좋은 일인가. 이만한 일 하나 이루는 데 우리는 얼마나 긴 세월을 보내야 하는가.

Best Rega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