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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Author : 황성혁     Date : 04-11-25 14:55     Hit : 14450    
 
 
대한조선학회지 제41권 제3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조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나라는 국민 총생산이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큰 나라이다. 무역량이 세계 열두 번째이고, 인구가 세계에서 스물여섯 번째로 많고, 군사력은 세계 6위의 강국이다. 이 나라는 수천 년의 기록된 역사를 갖고 있고,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이다. 국력으로 보나, 문화 전통으로 보나 스페인이나 네덜란드와 대등하고 벨지움 정도의 나라보다는 나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나라는 국제 사회에서 존경을 받기는커녕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남의 나라의 압제하에 있었을 때, 이 나라의 생산은 위축되었고 국민성은 황폐해졌고 동포의 삶은 생기를 잃었다. 앞날이 없는 세월이었다. 세계의 선진국들은 거리낌없이 이 나라를 내려다 보았다. “미개한 나라를 우월한 나라가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자치능력이 없으므로 독립하기 전 수십 년 동안 신탁통치를 해야 한다.” “그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전쟁이 끝나면 옆의 옛 대국이 그 나라의 종주권을 되 찾아야 한다.” 라고 들 했다.
압제를 벗어 난지 육십 년이 지났다. 이 나라는 선진기술을 흡수해서 나름대로 발전시켰고, 그들의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주름잡았으며, 세계 어느 곳보다 활발한 민주주의를 꽃피웠다. 역사상 가장 감동스러운 올림픽을 치렀으며, 세계의 잔치인 축구 월드컵까지 떡 벌어지게 차려내는 능력을 과시했다. 국제적으로 존경 받을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세계사람들에게 변함없는 미개한 나라로 치부되고 있고, 자치능력이 인정되지 않았고, 민주주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곳으로 남아 있다. 축복 받지 못한 남의 전쟁에 수천 명의 젊은이들을 파견해서, 테러리스트의 총구 앞에 세워 놓고도, 그 동맹국으로 인정되기를 거부당한다. 이 나라를 짓밟았던 조그만 이웃나라는 잘못된 역사를 강변하고 그들의 파렴치를 한치의 후회도 없이 미화한다. 갈갈이 찢긴 누더기를 덮은 옛날의 대국은 여러모로 그들을 돕고 있는 이 나라를 아직도 속국이라 생각 하려 한다. 역사도 잃고 권위와 영광도 잃은 북쪽의 동토의 나라까지 이 나라를 조폭들이 졸개 생각하듯 다루려 한다. 세계의 역사 교과서는 다투어 이 나라의 역사를 비하한다.

그런데 이 모멸과 오욕의 멍에는 불평할 수도 없고 하소연 할 곳도 없다. 그 모든 것들이 자초한 일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키도 크고 힘도 세어졌지만, 이 동포들의 정신은 마치 과잉 성장한 지진아처럼, 옛날 어려웠던 시절의  구겨진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끄러운 사람들, 경우 없는 사람들, 곁에 있으면 이웃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로 인식 되어갔다. 강한 사람들을 질시하고 약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사람들, 약간 잘되면 뻐기고 조금만 불리하면 삐치는 소인배들. 머리 좋은 사람들은 아니꼽고, 잘난 사람들은 보기 싫고, 돈 많은 사람들은 도둑놈으로 낙인 찍는 사람들. 노동자 같지 않은 노동자들의 응석받이 노조운동으로 세월이 좀먹는 나라, 말부터 하는 사람들, 생각할 틈도 없이 주먹 쥐고 거리로 뛰어 나오는 나라, 이 나라는 그런 나라로 취급되고 있다. 백성들의 마음 어디에도 조국은 없고, 동포에 대한 생각은 누구 마음 한구석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나라로 멸시되고 있다.

이라크의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한 젊은이의 참혹한 죽음은 이사회를 비탄과
극심한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장례 치를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주검이 훼손되는 것을 방치란 채 몸값 흥정이 계속되었다. 국회와 정부와 언론과 사회단체들은 외국통신사의 한국인 여기자가 외무부에 죽음에 관한 문의전화를 하였느냐 아니냐를 두고 국가예산과 그들의 높은 임금과 국가 예산과 국력을 소진하였다. 그런 비생산적인 입씨름보다, 그 천인공노할 테러리스들의 만행에 대해 먼저 규탄되어야 했다. 죽은 사람을 두고 말하기 안됐지만, 가지 말라는 곳을 우겨서 간 그는 우선 야단을 맞아야 했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은 벌을 받아야 했다. 가지 않아야 할 곳을 우겨서 간 경우, 이 사회가 그 결과를 거둘 책임이 없음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어물어물 넘어갈 일이 아니라, 그가 왜 테러리스트들에게 붙잡혀야 했고, 스스로를 욕되게 했고, 우리 사회를 욕보였는가를 먼저 분명히 밝혀야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국력의 낭비는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보상해야 했다. 끝없는 소모적인 논쟁을 마쳤을 때 결론은 없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런 국력의 허비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확실한 제도를 만들어야 했었다.

북한을 탈출한 동포들의 행렬이 끝이 없다. 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북한을 탈출하면 나머지는 이 나라의 몫이다. 이 나라가 거둬야 할 우리들의 핏줄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변 모든 나라들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우리 공관까지 천덕꾸러기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남쪽이 큰 죄나 짓는 듯 쉬쉬하며 그들을 거두는 동안, 문제의 장본인인 북쪽은 남쪽에게 죄인 어르듯 땅땅거린다. 이제 세계의 구석구석을 떠도는 이 버림받은 영혼들을 위해서라도 북쪽과 근본적인 대화를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백성을 굶기지 않는 것은 나라의 근본적 책임이며, 그들을 사해천지로 유리 걸식 시키는 것은 세계에 얼굴 들고 다닐 수 없는 수치스런 일이며,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는 그 정권을 계속 할 명분이 없어진다는 솔직한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거기서부터 이 참담한 민족적 문제를 해결 할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

박정희는 끝없이 매도되는 이름이다. 목청 큰 사람들은 그가 마치 이 나라를 지옥으로 만든, 우리의 동포 모두를 아수라로 몰아 넣은 이름으로 인용된다. 그가 이 나라의 가난을 몰아 내었고, 단군이래의 가장 잘 사는 나라를 일궈 내었으며, 그래서 이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주었고, 백성들 마음속에 처음으로 북한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을 심었다는 점은, 그들의 높은 목청 뒤에 묻혀 버린다. 그들이 그토록 불평해 마지않는 탄압도 이 사회를 안정 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의견은 무시된다. 더구나 그들은 이 조국을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어느 외적의 침입보다 참혹했던 전란을 일으켜 우리 동포를 육체적인 죽음과 고통, 정신적인 미증유의 공황 속으로 몰아 넣었던 북한 정권보다 그를 더 심하게 매질을 하고 있다. 그의 동상 파괴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장승 파괴와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가. 조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동포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발전량의 40%가 원자력 발전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재산이며 부담이다. 원자력 발전을 하면 폐기물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 폐기물 처리시설을 두고 우리는 유례없는 국력의 손실을 경험했다. 아이들의 등교가 거부되었고 아이들은 경찰의 저지선 앞에 앉혀 졌다. 환경의 파괴와 안전에 관한 논쟁은 길거리에서 넘쳐 흘렀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무시되었고, 경찰은 폭력의 대상이었다. 모두들 환경보호를 외쳤지만, 보상금 몇 푼 더 타내기 위한 국력의 탕진이라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는 아무도 살 수 없다. 망자를 적절히 장례를 지내는 것은 정상적인 삶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쓰레기 소각장과 장례장 건설은 지역주민들에 의해 결사 반대된다. 쓰레기로 가득 찬 우리 백성들의 속병은 어떻게 치유되어야 하는가.
공권력 없이 우리의 삶은 어떻게 지속 될 수 없다. 우리의 젊은 경찰관들은 농민들에게, 노동자들에게, 학부형들에게, 선생들에게, 심지어는 종교인들에게 일방적 이유로 시달리고 있다. 무엇이든 그들 뜻대로 되지 않으면 폭력을 휘두른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보상금 한두 푼 얻어내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공권력을 흔들어 놓는 것이다. 공권력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보호는 앞으로 단호히 거부되어야 한다.
서울시가 혁명적인 교통 개선안을 내놓았다. 권역 별로 특징적인 색깔을 썼고 중앙차도를 도입했고 일괄적인 번호시스템을 적용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서면 이것이 서울이었나 싶을 정도로 빠르고 편하다. 큰 상을 받아야 할 교통 담당자들에게 불평과 욕설만 돌아간다. 번호가 혼란스럽고 버스 노선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안내문에 눈 한번 주지 않고, 버스노선 표지판 한번 읽지 않고 그저 욕설이다. 음식을 씹을 능력이 없는, 유동식만으로 사는 중병 환자들 같다.
어느 일본 신문의 한국 특파원의 말이 생각난다. “한국이 조용하면 일본인들은 불안해진다. 항상 떠들썩 하다가 조용해지면, 갑자기 무슨 큰일이 일어날 것 같기 때문이다.” 끝없는 경박스러움, 무엇이건 거리로 들고 나서는 무질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박살내는 지도자들의 경망스런 독선, 이런 것들이 우리 민족이 정당한 대접을 받을 수 없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조국을 생각하자. 조국을 생각하자. 세계 속의 조국을 생각하자. 조국의 품속의 우리를 생각하자. 조국으로부터 적은 보상을 기대하기 전에 우리가 조국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자. 어떻게 조곡에 바칠 것인가를 생각하자. 우리 손으로 조국의 얼굴을 맑앟게 닦아 내자. 우리의 얼굴이 맑앟게 빚 날 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