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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Author : 황성혁     Date : 05-05-09 09:00     Hit : 13099    
 
 
2004년 3월 30일 대한조선학회지 제 42권 제1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타 할머니가 보고 싶다.” 한 여성신문의 첫 페이지를 덮은 이야기의 제목이었다. 산타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더 융통성이 있을 것 같고, 엉킨 경제의 주름살을 더 잘 펴 줄 것 같고, 세상에서 폭력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다 줄 것 같기 때문에, 산타는 할아버지 보다 할머니였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기발한 착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요즈음 여성들의 사는 방식과 여성운동의 속내를 반영한 것 같아 마음이 씁쓸 했다. 그분의 고난은 못 본척하고, 겉으로 나타난 산타의 화려함만을 취해서 여성이냐 남성이냐를 왈가왈부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산타는 일년을 하루같이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 제멋대로 설쳐대는 야생의 사슴들을 다독거리며 단련하고, 온 세상의 어려움과 불편을 끊임 없이 살핀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온몸이 얼어붙는 멀고 먼 얼음 길을 썰매를 몰아 달려 온다. 일년 동안 보아둔 가난한 아이들, 버림받은 아이들, 상을 줘야 할 착한 아이들의 집을 찾아가 그 집의 검정투성이의 좁은 굴뚝을 기어 내린다. 조금도 힘든 척 하지 않고, 싫다는 내색 한번 없이 그 고난을 치러 낸다. 엄청난 체력이 없이는, 엄청난 참을성 없이는, 이 세상에 기쁨을 나누어 준다는 처절한 염원이 없이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하얀 털 달린 빨간 외투를 입고, 빨간 코 루돌프 사슴들을 신나게 몰면서, 오직 홍소만 터트리는 그 여유로운 얼굴로 아이들의 침대 맡에 있는 양말에 마음 설레이는 선물을 넣으면서 모양만 내는 것이 산타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산타에 대해 그런 실례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고된 역정을 견뎌 낼 수 있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있다면 정말 나도 보고 싶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눈부시다. 정식임용 예비 판사의 절반이 여성이고 신규임용 검사의 40%가 여성이며, 법원 검찰 경찰의 고위직들에 여성들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 방송국의 신입 예비사원의 53%가 여성이고 은행권도 40-60%가 여성이다. 군법무관 임용시험의 과반이 여성이다. 여덟 개의 국가고시에서 여성들이 수석을 싹쓸이 하고 합격률도 괄목할 만큼 성장하고 있다. 초등교사 임용시험에서 여성 합격자는 90%를 초과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온다. 사회의 정서를 이끄는 TV의 드라마는 의례 여성작가가 쓰는 것으로 되어 버렸고, 사관학교에 여성들의 입학이 허용되면서 여성 장교의 숫자가 급속히 늘어 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약자로써의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배려가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모성보호규정 등에 더하여 추가 요구 사항들이 끊이지 않는다. 각종 선거에서 여성들에게 특별한 배려를 하여야 한다고 주장 한다. 여성의 보다 많은 정치 참여를 위해 정당 보조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한다. 여성 경제인 협회는 여성기업을 위한 특별지원 정책을 요구한다. 여성 기업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정부조달 물품구매 시 여성 기업제품 5% 구매 의무화, 여성기업을 위한 지원센터 건립 등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여성 차별에 대한 시비는 계속된다. 입사지원서에 신장과 체중을 기재하라고 하면 여성의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 비난하고, 결혼한 뒤 계속 회사 나올 것이냐고 물으면 여성 비하 발언이라고 비판된다. 생리휴가나 임신에 관한 회사의 규정은 모두 여성 차별로 분류된다. 여성의 유혹으로 시작된 성 희롱 문제는 언제나 거기에 넘어간 어수룩한 남자를 파렴치한으로 만든다.
선거 때마다 정치권은 혹시 몇 표 더 얻을까 하고 여성들의 요구에 따라다녔다. 세상에 유례가 없는 유급 생리휴가가 주어졌고, 정부에 여성부가 설치 되었고, 2007년까지 정부에서 여성파워를 절반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고 국회의원과 여러 선출 직에 여성을 의무적으로 지명하겠다고 약속했다. 돌아가면서 여성을 대통령으로 하자는 논의도 무르익는다고 했다. 인력의 채용문제는 원가와 업무의 효율을 고려하여 회사가 기준을 세우고 그에 맞추어 결정해야 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원가를 책임지지 않는 정치권의 인기몰이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세상 모르는 여론 재판의 대상이 되곤 했다.

호주제의 완전 폐지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되는 날 만세 부르는 여인들을 보았다. 그들이 수십 년 동안 끈질기게 추구해 오던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그 기쁨이 오죽하랴.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가족간의 족쇄가 결국 그녀들의 손으로 혁파되었던 것이다. 이로서 양성 사이의 사랑과 존경, 가정에서의 민주성과 성 평등이 새로이 정의되고, 개인의 존엄이 다시 강조됨으로써 가족공동체가 나아 가야 할 새로운 방향이 설정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호주제의 폐지는 여성에게 커다란 권리를 되돌려 줌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도 지웠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성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받던 모든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지만 동시에 “여성이기 때문에” 받던 특별한 보호도 마땅히 벗어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안에, 여성들의 근본적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몇몇 여성들의 감투 잡기 위한 놀이터로 되어 가는 듯한 여성부 같은 것을 남겨 두는 것은 역설적으로 성 차별을 방치 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여성이 남성의 영역에 뛰어 들었을 때, 남성과 대등한 경쟁을 벌일 때 특혜를 기대하는 것은 역시 역 성차별일수 있다.

남성들의 퇴임 연령이 낮아지고 실업자들의 숫자가 나날이 늘어나는 이때 약진하는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보는 것은 한편으로 대견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다. 학교에서 남자 선생님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 사회의 정서와 일상을 이끌어 가는 드라마는 온통 여성적인 눈물과 감성적 대사로 이루어 진다. 우리의 일상의 질서와 시비는 점점 더 많은 여성 법관에 의해 다스려 지게 되었다. 국가 기관이나 직장에서 여성 상위직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의 성에 어머니 성을 병기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성을 먼저 놓고 아버지 성을 뒤에 두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아이들의 교육은 부드러운 여자 선생님 아래 유지될 수는 있겠지만, 청소년은 오히려 거친 듯한 남자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드라마가 그려야 할 것이 최루적이고 감상적인 여성상만이 아니고, 지성적이고 때로는 땀과 피의 냄새가 베인, 폭풍 속에 삶의 뿌리를 시험 받는 고난을 담은 남성적 삶이다. 우리의 일상의 삶은 오직 법전만 열심히 외운 온실 속의 법관들 보다 인생의 깊은 간난을 거친 인생의 깊이를 아는 법관의 손으로 판단되어야 된다. 직장에서 국가기관에서 여성상관의 따스한 손길은 부하들을 편안하게 하고 상사들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으나 위기가 왔을 때 조직을 장악하고 재빠른 결정을 내리는 능력에 있어서 여성은 남성을 따를 수 없다.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아버지의 성 두 개와 어머니의 성 두 개씩이 불어 나간다면 앞으로 아이들의 성은 몇 개씩이나 되어야 하며 어떻게 관리 되어야 할까.

남성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여성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동의 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와의 사이에는 엄연히 벽이 있으며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이룰 수 있는 것이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의 성적이 남학생 보다 낫다고 해서 그 여성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공부하는 방법과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이 여성과 남성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단지 몇 개의 과목을 외우는 능력의 차이를 내세워 남성과 여성의 사회구성을 결정한다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균형에 상처를 줄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성들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할 일은 “좋은 엄마”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항변한다. 그러면 여성에게 “좋은 엄마” 보다 더 낳은 역할이 무엇이 있을까. 아이들을 팽개쳐 놓고, 직장을 계속 잃어가는 남성 사회에 끼어들어 남성들을 밀어 내면서, 혹은 남성보다 낳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여성의 천부적 역할일까. 여성의 사회 진출과 더불어 대두된 가장 큰 문제는 저 출산이다. 우리 사회의 저 출산 문제는 여성의 사회진출로 얻을 수 있는 수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손실을 이 사회에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얼마나 잘 사느냐의 문제이기 전에 이 사회의 존속 여부에 대한 근원적 문제인 것이다. 여성운동은 무엇보다 이 저 출산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저 출산 문제는 정치계 진출이나 그 무엇보다 여성이 걱정해야 할 제일 첫 번째 과제가 아닐까.

여성은 여성다울 때 아름답다. 여성이 남성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여성은 더욱 아름답다. 아기를 가질 때 그리고 그들을 기를 때 여성은 가장 아름답다. 물론 남성에게도 그것은 같이 적용될 수 있다. 양성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그 벽을 허물기 시작할 때 아름다움은 같이 허물어 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산타 할머니는 아름다울 수 없다. 그저 흉물스러울 뿐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