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Essays > Korea Essays

 
 
 
   
  축구공에 붙은 우표딱지
  Author : 황성혁     Date : 05-11-25 14:16     Hit : 12968    
 
 
한국경제신문 2005년 11월 4일자에 실린 Essay입니다.
 

축구공에 붙은 우표딱지
 

1970년대 초 런던 지점에 부임했을 때 가장 내 마음을 끌었던 것은 박물관이었다. 런던은 박물관의 도시 같았다. 세계 구석구석으로부터 구해온 진기하고 귀중한 인류의 역사적 유물들과 자연의 신비를 헤아릴 수 없는 박물관에 보기 좋고 이해하기 쉽게 전시해 놓아 휴일에 시간이 날 때마다 발길은 그 쪽으로 향했었다. 언젠가 조그만 과학 박물관을 찾은 적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발판 위에 눈높이로 놓여 있는 축구공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박물관에 웬 축구공" 하며 지나치려다 그 공의 뒷면에 붙어 있는 조그만 동판을 보았다. 거기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구를 축구공의 크기라고 보면 지구 표면의 가장 높은 산 꼭대기와 가장 깊은 바다의 바닥 사이 거리는 우표 딱지의 두께 정도다." 그 축구공에는 우표 딱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축구공에 붙은 우표 딱지는 늘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한번 계산을 해서 그 비유가 그들이 좋아하는 조크인지, 숫자로도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인지 따져 봐야겠다고 늘 생각은 했지만 삼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저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머리에 지금까지 박혀 있는 그 깊은 충격이다.
인간의 삶을 보호하고 있는 공간의 왜소함, 그 속에서 마치 하느님이나 된 듯 거들먹거리는 인간들,그 먼지 같은 존재들이 먼지 같다고 부르는 더 왜소한 존재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먼지 같은 존재들의 아름다움, 그 생명의 존귀함, 그 먼지들의 생성과 소멸의 신비함을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 여름 인도네시아에서 해일로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때는 그래도 충격이 덜했다.
준비가 덜 된 평화로운 마을에 갑자기 천재지변이 닥쳐 아까운 목숨들을 잃었구나 했었다.
그러나 늘 때만 되면 찾아오던 친숙한 허리케인이, 세계에서 가장 풍요롭고 삶의 보호장치가 잘 되어 있는 미국에서 수만 명의 목숨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도시 하나를 소멸시킨 일을 보고서 자연이 내릴 수 있는, 그 크기를 잴 수 없는 재앙의 힘 앞에 엎드려 그저 자비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것이 시작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받을 재앙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혹독해지리라는 것이다.
생태계의 변화, 대형 질병, 농작물 흉작과 삶을 위협하는 재앙들이 상상할 수 없는 크기로 확대되리라는 것이다.
모든 재앙은 자연이 균형을 잃었을 때 찾아온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 과소비와 과식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인간은 가끔 자신의 왜소함을 잊고 산다.
적당한 중력으로 우리 발을 땅에 고정시키고, 적당한 압력으로 우리 몸을 지탱시키며, 적당한 양의 햇빛, 공기와 물을 주어 우리의 생명을 존속시키는 것은 자연이다.
오히려 먼지 같은 인간들이 그 자연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함으로써 생태계는 파괴되고, 자연의 저항이 시작되는 것이다.
환경을 지키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은 살려고 들어온 인간들의 첫 번째 의무다. 외경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