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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이야기
  Author : 황성혁     Date : 06-01-12 15:53     Hit : 20491    
 
 
한국경제신문 12월 30일자에 실린 에세이입니다.
 

피터 이야기

세모에 Peter를 생각한다. 

나는 그의 성을 모른다. 모두 그를 Peter라고 불렀다. 그는 내가 다니던 회사의 홍콩 지점장 승용차 기사였다. 차를 쓰지 않을 때 문서 수발을 도맡았고 바깥일이 없을 때는 사무실에서 전화도 받고 자질구레한 일을 찾아 내어 처리했다. 그가 하루라도 결근을 하면 사무실이 텅 빈 것 같았다. 그는 사무실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스스로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홍콩의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남쪽 중국 사람이었다. 작은 키에 몸은 가냘펐고 주름이 많은 얼굴은 그을린 편이었다. 그는 영어로 의사 소통을 하는데 불편이 없었지만 그의 영어에는 남부 중국인들의 어투가 강하게 스며 있어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알아 듣기가 어려웠다. 그는 중국인 특유의 체념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영국적인 철저한 준법정신이 그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어 법을 지키는데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홍콩 출장 갈 때마다 그가 나를 태우고 다녔다. 언젠가 홍콩섬과 구룡 사이의 해저 터널을 지날 때였다. 왕복 각각 2차선인 터널 안에서 그가 1차선으로 들어섰었다. 2차선의 차들은 쌩쌩 지나가는데 사고가 났는지 1차선은 한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남들이 하듯 2차선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그는 명확하게 말했다. “2중 황색 실선(Double Yellow Solid Line) 인걸요.” 한번도 내게 거절 한적이 없는 그의 첫 번째 뚜렷한 거부였다. 나는 그의 부드럽지만 확고한 깨우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부끄러웠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작고 부드러웠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그 나름대로의 생활방법이었다. 홍콩을 떠날 때 마다 나는 호주머니에 남아 있는 몇 푼 되지 않는 홍콩 돈을 그의 손에 쥐어 주곤 했다. 돈이 많건 적건 그는 호들갑 떨지 않고 진심으로 고맙게 받았다. 언젠가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요리 강습서를 보았다. 그는 부끄러운 듯 책을 감추었다. “형편이 되면 간단한 음식점을 차려 볼까 하구요” 90년대 초 중국이 홍콩을 접수했을 때 불평한마디 없이 그는 캐나다로 떠났다. 싫은 사람들의 간섭 받지 않고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시였다.

법 지키지 않는 것이 자랑이고 법에 맞서는 것이 용기이며 목소리 크기로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세태를 볼 때마다 나는 피터로 대표되는 홍콩을 생각한다. 우선 법을 지키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자신을 절제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를 생각한다. 피터는 지금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는 미소가 머문다. 캐나다의 어느 조그만 도시의, 어느 조용한 거리에서 별로 눈에 뜨지 않는 조그만 중국 음식점을 차려 놓고 곰지락 거리며 하루하루를 분복에 맞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내게 그는 진실한 세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