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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효철, 배 광준 교수 정년 퇴임식에서
  Author : 황성혁     Date : 06-04-27 10:40     Hit : 20013    
 
 
대한조선학회 제43권 제1호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선과 동창회 및 조선학회가 공동 주체한 김효철, 배광준 교수의 퇴임식에서 발표한 축하 연설문입니다.
 

김 효철, 배 광준 교수 정년 퇴임식에서

존경하는 선배님들, 동기들 그리고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

천지에 봄기운이 넘치고 있습니다. 떠나는 계절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봄이 느껴진다 싶으면 떠날 준비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을 떠나 보낼 준비를 하고 또 새로운 삶을 시작할 준비를 합니다. 김 효철, 배 광준 교수도 그들의 빛나는 40여 년간의 학문적 업적과 인간적 지도력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이 봄에 새로운 길을 떠납니다. 우리는 같이 했던 아름다운 옛날을 함께 회고하고 다가올 앞 날을 축복하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모임을 주선하신 공대 조선과 신 종계 교수를 비롯한 모든 교수님들, 진수회 김 국호 회장, 창우회 서 기호 회장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두 분은 어려울 때와 행복했던 때를 살며 조선 학도로서 체험해야 할 것은 다 하였습니다. 시작은 모험이었습니다. 배를 좋아하고 배를 설계하고 배를 만든다는 것에 빠져서 시작은 하였지만 여건은 최악이었습니다. 50년대 말 대학에 입학했을 때 우리나라에는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고 할 일도 변변치 않았던 조선공사가 그나마 간판을 달고 있던 유일한 조선소 였습니다. 김 재근 교수님을 위시한 선배 교수들이 끈질기게 조선학과의 명맥을 붙들고 계셨지만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였습니다. 물론 그때 일본이 세계적인 조선 공업국가로 급성장을 하고 있었고 우리도 질 것이 없다는 오기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눈앞의 현실은 보잘것없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요. 이 두 분은 현대 조선공업의 시작을 이끄셨고 세계적인 조선 공업으로의 도약에 참여하셨고 드디어 그 창대한 결말까지 보셨습니다. 이 두 분이야 말로 용기 있게 시작해서 끈기와 뚝심으로 난관을 이겨내고 세계 최고 최대의 조선국가라는 빛나는 결과를 보게 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한국의 현대적 조선 공업 초창기를 보아 왔습니다. 72년 영국에서, 74년 뉴욕에서 세계적인 선진기술의 도입을 위해 씨름하고 있을 때 나의 영웅은 배 광준 교수였습니다. 영국 왕립 조선학회에 가서도 그렇고 뉴욕지점에 있을 때도 배교수가 내 Class mate였다는 말 한마디로 나는 곳곳에서 존경 받았습니다. 그는 그의 논문과 강의로 이미 세계적인 명성이 확고했던 것입니다. 한국에 들어와서 조선학도로서의 삶은 김 효철 교수와의 인연입니다. 나는 나를 소개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다른 말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김교수와 함께 공부했다고만 말했습니다. 그것은 세상 최고의 Passport 였고 어디나 통하는 Certificate였습니다. 그는 학계를 이끌고 있었고 조선학회를 만들고 그 내실을 다진 창조적인 지도자 였기 때문입니다. 

만장하신 여러분;

신 종계 교수께서 제게 이 자리에 서는 영광을 베풀어 주신 것은 제가 두 분과 비교적 오래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지난 세월 두 분과의 친교를 정리해 보라는 주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누리고 있는 오늘의 이 자리는 이 두 분과의 교유와 그들이 준 감화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골 학생이 서울에 와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 특히 스스로 학비를 벌어 학교를 다녀야 했을 때 배교수는 제게 둘도 없는 정신적 울타리였습니다. 그가 공대에 입학했을 때 그의 부모님은 부산집을 정리해서 청량리 근처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학교를 오가기 위해 청량리에서 버스를 갈아타는 저에게는 오아시스였습니다. 밥도 얻어먹고, 쉬기도 하고 근처에 엄 도제 중위의 집도 있어 편하게 들락거렸습니다. 학기에도 붙어 다녔지만 방학 때도 우리는 시시닥 거렸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엽서가 오갔습니다. 그는 엽서에 모지동 선생이라 나를 불렀고 나는 그를 십옹댕 선생이라 불렀습니다. 이것을 KBS에서 요즈음 노 현정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인기 프로인 OLD & NEW에 한번 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됩니다. OLD 나 NEW generation 을 망라해서 이 말의 뜻을 풀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으로 확신 합니다. 뒷날 풀어 드리겠습니다. 66년 6월 저는 결혼을 했지요. 인천의 철로 가에 싸지만 예쁜 사글세 방에 신혼 살림을 차렸는데 제일 먼저 찾아온 친구도 배 교수였습니다. 정 춘길 군과 명동에서 둘이 만나 군밤, 군고마, 오징어 구이 등 닥치는 대로 한 짐 사서 인천까지 내려 왔던 것입니다. 내가 현대 뉴욕지점 개설 요원으로 나갔던 74년 나는 보스톤 가는 길에 MIT 대학에 있던 배교수 아파트에 들렀습니다. 온통 10불짜리 가구로 채워진 그 소박한 아파트에서 그는 학문적 성취감과 가족과의 단란함으로 터질듯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김 효철 교수와의 진정한 교유는 한참 뒤에 시작되었습니다. 시골서 올라온 촌놈에게 서울 사람은 모두 깍쟁이들이었고 서울 친구들은 나를 시골뚜기 꼴뚜기로 보는 것 같아서 진정한 교유가 이루어 지기 어려웠습니다. 또 우리는 그렇게 쉽게 남에게 마음을 주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사귀기가 어려웠지만 그러나 한번 사귀고 나면 오래 지속되는 그런 우정을 가꾸어 왔습니다. 조선소에 맹렬한 건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늦게 알았느냐는 듯 가까워졌습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자료는 그가 공급했고, 그가 필요로 하는 현장 경험은 제가 채워 주었지요. 소주는 언제나 우리를 붙여 놓는 아교이며 다리였습니다. 그동안 함께 마신 소주를 계량하면 상당한 양이 되리라 생각 합니다. 시험을 못쳐도 막걸리를 마시고 잘 쳐도 마시던 재학 시절 같았습니다. 월미도 낙조를 바라보며 마셨고 목표 해변의 새발 낙지를 끝까지 추적해서 마셨지요. 그는 별로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와 우리 친구들에게 그는 잴 수 없는 생각 깊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움들을 주었습니다. 그는 조선학회 회장을 하면서 내게 영예로운 부회장 자리를 제안했고 내가 진수회 회장을 할 때 부회장 자리를 맡아 저를 도와 주었습니다. 그가 학회 출석비 푼돈을 모아 기천만원을 만들어 소주 마시는 파티를 만들었고 제가 학회지에 “이십 년 묵은 소주”라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래서 그 모임의 이름은 잘 익은 소주라는 뜻으로 이제 “숙주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조선 해운에 관계된 사람의 우정을 영원히 익혀 나갈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 그것은 화수분 같아서 아무리 먹어도 줄어 들지 않아 얼마나 소주를 마셔야 할지 우리 김교수의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김 효철, 배 광준 교수님:

두 분은 앞으로 30년 이상을 더 살 준비를 해야 합니다. 두 분은 주변에 쌓아온 두터운 인간관계와, 예술 종교에 두루 걸친 넓은 삶의 Spectrum 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멋진 새로운 세계를 펼쳐 나가시리라 확신하지만, 한편으로 여기 모인 모든 친지 후배들이 두 분의 삶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그만큼 멋지게 살아야 할 의무가 생긴 것입니다. 한 20년도 넘은 옛날 이야기 입니다. 현대중공업이 Towing Tank를 만들었을 때 일입니다. 시설은 잘 만들었는데 세계의 선주들의 인정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도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마침 네덜란드의 와게닝겐 수조의 소장이 곧 은퇴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을 모시러 갔습니다. 은퇴를 하시는 분이니 직장을 제안하면 두말없이 수락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림도 없는 우리의 착각이었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거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은퇴를 위한 준비를 해 왔고 이미 캐러밴을 준비해서 침대, 오디오, 서재까지 갖추어 놓고 부인과 떠날 준비를 해 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럽의 구석구석을 뒤져 역사 유적을 확인 하고 몇 년이 걸리건 자신의 눈으로 본 유럽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간신히 설득을 해서 일년 남짓 한국에 오셨고 또 한국에서의 생활을 즐기셨지만 그의 은퇴 후 계획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직장으로부터의 은퇴가 얼마나 큰 새로운 삶의 시작인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멋진 삶을 보여 주십시요. 건강하고 다양하고 더욱 창조적인 삶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요. 에머슨은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 그것은 그가 태어났을 때의 세상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죽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두분의 멋진 삶으로 우리 주변을 더욱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두 분들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오랜 세월의 은혜에 감사하고 앞으로 계속될 멋진 삶을 확신하는 힘찬 박수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