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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조선소에 가다.
  Author : 황성혁     Date : 07-10-25 14:51     Hit : 19384    
 
 
2007년 9월 30일자 대한조선학회지 제44권 제3호에 실림 칼럼입니다.
 
 

중국 조선소에 가다

 

90년 사무실을 연 뒤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는 작업이 있다. 매달 KOREA REPORT를 작성해서 고객들에게 보내는 것이다. 수중에 있는 영업에 관련된 정보를 공개적으로 노출 시킬 수는 없는 일이어서, 나의 사무실이 열려있고 내가 활동을 계속하고 있음을 알리는 방법으로 KOREA REPORT 를 쓰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GOVERNMENT AND SOCIETY, NORTH KOREA AND NATIONAL DEFENSE, ECONOMY AND POLICIES, CHAEBOLS, MONETARY INDICES, SHIPBUILDING AND SHIPPING의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매일 TRADEWINDS, KOREA HERALD, 동아일보, 한국경제등 신문의 구석구석을 뒤져, 내 고객들에게 도움이 되고 흥미를 끌만한 부분을 오려내어서 모아 놓으면 월말에는 컴퓨터에 150 페이지 정도가 쌓이게 된다. 매달 첫 주일 그것을 정리하고 요약해서 10-15 페이지의 KOREA REPORT를 만드는 것이다. 매달 첫 며칠은 새벽 두 세시까지 몰두해야 5-6일경에 내보낼 수 있게 된다. 상당히 고된 일이지만 집중을 한다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변하며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계속하고 있다. 매달 독자들로부터 들어 오는 격려의 멧세지도 큰 힘이 되긴 한다.

KOREA REPORT 중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나의 일일 업무와 관련되는SHIPBUILDING AND SHIPPING 이다. 정기간행물 외에 수없이 들어오는 조선해운 관련 보고서나 단신들을 매일 모아 놓는다. 특히 전 세계에서 체결되고 있는 선박 신조계약에 대한 정보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모든 신조계약은 건 별로 두줄 정도로 요약을 하는데 작년부터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중국 조선소의 신조 계약이 차지하는 넓이가 폭증한 것이다. 일본이 합쳐서 20줄 미만인데 비해 중국은 거의 100 줄이 넘어 2페이지 반이나 차지 하는 것이다. 한국은 주문량이 많다고는 하나 비싼 배들이고 계약건수로는 50줄을 넘지 못한다. 그렇게 많은 조선소가 중국에 존재했던가 하고 경악할 지경이었다. 중국의 숫자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중국 조선소의 외국이나 그들 국영해운과의 계약 건수이며, 작은 조선소의 선박신조계약이나, 국내 소형 선사와의 계약까지 넣으면 그 숫자는 몇 배가 되리라 쉽게 추산할 수 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중국조선소들의 신조계약 소식과 함께 선박 매매에 관한 자료도 봇물을 이루고 있었다. 짓고 있는 배를 팔겠다는 것도 있었고 앞으로 지을 배를 사라는 정보도 있었고 중고선을 시장에 내놓은 것도 있었다. 중국조선소의 자세도 옛날과 판연히 달라졌다. 가격 협상에 고분고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신조가격수준에 버금가는 가격을 내놓고 버티곤 해서 신조 시장으로서의 중국의 매력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건조중인 선박의 판매정보가 나왔다. 1100 TEU CONTAINER 선이었는데 1300 만불 수준으로 사 가라는 것이었다. 그 정도의 배라면 중국 안에서도 2000-2300 만 불 정도, 세계 시장 가격은 2500 만불 수준을 호가하고 있었다.

해운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나의 가까운 친구와 그 배를 보러 가기로 작정을 했다. 중국 해운업자들의 비 상식적인 가격 덤핑에 골치를 앓고 있던 참이었다. 컨테이너 하나당 운임이 500 불은 되어야 수지를 맞출 수 있는데, 중국 업자들은 어떤 경우 150 불로도 화물을 가로채 가서, 중국 행 장사는 수지를 맞추기 아주 어려운 것으로 점 찍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반 값 짜리 선박이 시장에 나온 것이다. 배를 어떻게 짓길래 반값으로 팔 수 있는지, 그런 배는 어떤 성능을 갖고 있는지, 누가 사서 어떻게 운항을 하면 그 상상할 수도 없는 운임이 계산되는지, 눈으로 확인 하고 싶어서였다. 금년 3월초 우리는 그 문제의 조선소가 있는 타이조우 지역을 방문했다. 작년 그맘때 양자강 주변의 조선소들을 방문한 뒤 두 번째 중국 조선소 방문이었다. 양자강변 조선소들은 한국조선소처럼 완벽하게 갖추어진 조선소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독일선주들이 많은 배를 지어 갔고, 그 과정에서 훈련도 되어 있어서 품질에 관한 한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선가도 한국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제지앙성(浙江省) 타이조우시(台州市) 지역에 있는 조선소의 상황은 양자강 주변과 완전히 달랐다. 역사적으로 조선이 주된 산업이었던 타이조우지역은 지금도 해변과 작은 강변에 조선소들이 빼곡히 들어 서 있었다.

200 여개의 조선소가 모여 있다고 했다. 소위 모랫톱 조선소 (BEACH YARD) 라는 것이었다. 수없이 많은 조선소가 밀집되어 있어서, 이틀 동안에 여러 형태의 조선소와 여러 단계의 건조공정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어선을 한꺼번에 30 여 척씩 찍어 내듯이 짓는 조선소가 있는가 하면 5 만 톤 급 선박도 건조하고 있었다. 그들은 옛날식 공법으로 배를 짓고 있었다. 우선 배의 밑바닥 용골 철판을 선박의 길이만큼 깔아놓고 용골 설치가 끝나면 선수부의 꼭대기에 오성홍기를 걸어 놓았다. 그리고 늑골을 붙여 나갔다. 그런 다음 외판을 하나하나 붙였다. 페인트를 끝내고 선박의 외관이 말끔해지면 철판이음새와 늑골 부분의 울렁거림이 한눈에 들어왔다. 선체는 메끈하다기 보다 울퉁불퉁하다고 표현해야 될 것 같았다. 그런 뒤, 진수라는 것을 했다.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었다. 조선소 한쪽에 쌓아 두었던 하얀색의 벼개 같은 것을 선박아래에 늘어 놓고 거기에 압축공기를 불어 넣었다. 배가 그 부풀어 오른 벼개위에 얹히면 건조블록들을 제거하고 그 부분 도장을 끝냈다. 그런 뒤 예인선이 물에서 끌고 육지에서는 트럭이 밀어서 배를 물로 끌어 내는 것이었다.  우리를 안내하던 중국 브로커에게 물었다.
“아니 저렇게 해서 진수가 안전하게 되는 거요.”
“걱정 마세요. 압축공기를 충분히 넣으면 내 무릎으로도 밀어낼 수가 있다구요.”

1100 TEU 컨테이너선을 1300만불에 팔겠다는 조선소에 도착한 것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서였다. 사무실은 벽돌로 지었으나 간이 건물이었다. 사무실 앞 넓적한 땅은 시멘트로 포장을 해 놓았는데 건성으로 시멘트를 발라 놓아서 중량물을 조립할 정도는 되지 않았다. 선박의 건조 현장으로 갔다. 여러 척의 선박이 건조되고 있었다. 우선 용골을 선박의 길이 전체에 깔고 그 끝에 중국의 오성홍기를 꽂고 있는 것, 늑골을 붙이고 있는 것, 늑골 위에 외판을 붙이고 있는 것, 거의 완성 되어서 배 밑에 벼개를 깔고 있는 것 등 여러 공정을 모두 한 조선소에서 볼 수 있었다. 건조 현장을 둘러본 뒤 사무실에서들 모였다. 책임자가 나와 조선소의 실적과 건조 능력을 설명하였고, 사양서 일반 배치도 등도 책상 위에 펴졌다. 첫눈에 잡히는 것이 선박의 속도였다. 그런 배라면 보통 20 노트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13 노트라고 명기 되어 있었다.
“컨테이너 선인데 어떻게 13 노트로 설계를 했죠.”
“말도 마십쇼. 배는 건조를 시작했는데 엔진을 못 구한 겁니다. 운이 좋게 중속 엔진인 필스틱 엔진을 구했지요. 그런데 마력이 부족해서 13노트 정도 밖에 안 나올 것으로 계산이 되었습니다.”
일상적 상식은 여기에 속하지 않았다. 13 노트도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았다.

사무실을 나와서 나는 우리를 안내하던 중국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선주와 계약도 없이 배를 짓지요. 배를 짓자면 엄청난 자본이 필요 할텐데.”
그의 대륙적 허풍은 계속되었다.
“전혀 걱정 없어요. 이 조선소의 사주는 무지무지하게 부자거든요. 이런 것 몇 척씩 지을 돈이 있어요. 지어만 놓으면 사 갈 사람은 얼마든지 있거든요.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아요.”
사 갈 사람이 많다면서 그는 우리에게 그 배를 사가라고 애걸 하고 있었다.
“글쎄 여기서는 결정을 못하겠어요. 귀국해서 검토한 뒤 연락을 드릴께요.”
우리의 부정적인 반응에 그는 바로 장터의 흥정꾼으로 돌변했다.
“얼마면 사겠어요. 값을 불러보세요. 어떤 값이라도 불러보세요.”
값을 부를 형편이 아니었다. 쓸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잡담이 진행되다가 나는 농담 삼아 한마디 하였다.
“그래 살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의 허풍은 계속되었다.
“조건만 맞으면 거저 줄 수도 있어요.”
이런 중국적 관행이 세계의 조선과 해운시장으로부터 경원되는 덤핑의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이조우 지역에 있는 조선소는 200 여 개라고 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둘러 보았다. 물가에 돌을 늘어 세워 놓으면 하나의 선대가 되는 것이어서 조선소의 개수나 선대 숫자에 대한 통계를 잡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배만 지으면 떼 돈을 번다는 생각들을 하며, 사 갈 사람이 없어도 빈 모래톱이 있으면 배를 짓고, 엔진이 없어도 선박건조는 계속된다. 무시무시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사유재산제도를 허용하지 않던 공산사회에서 자본주의 세상으로의 급작스런 전환이 자기 재산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까지도 자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 일까. 자기 재산에 대한 책임을 질줄 모르는 자본주의가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가에 대한 책임, 혹은 세계 조선 해운 산업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인가 암담한 마음이 들었다.

중국의 경제는 어디까지 확장되어 갈 것인가. 중국의 교역은 언제까지 팽창을 지속할 것인가. 중국의 경제성장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는 세계 해운 시장은 이 전대미문의 호황을 얼마나 오래 끌고 갈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이 이끌고 있는 세계 조선 시장의 호황은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 지난 몇 년간 세계의 주력으로 성장한 중국조선 공업은 세계의 이웃들과 공생하며 자생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의 발전하는 모습은 경이와 외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중국의 오늘이 좀 뒤떨어 진 듯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이끌어 상생하는 길을 찾아 낸다면 중국은 우리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는 이웃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도 갖게 되었다.

한편으로 우리나라의 조선공업을 생각하게 된다. 우후 죽순처럼 일어 나는 신규 조선소들의 겉으로 나타나는 엄청난 팽창을 보면서도 별 활기를 느낄 수 없다. 조선소가 들어설 수 없는 곳에 조선소를 짓는다고 한다. 세계 해운 시장의 전망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없이, 조선소 인력을 확보할 계획도 없이, 엔진을 구할 능력도 없이, 철판을 확보할 대책도 없이 조선소부터 짓는다고 한다. 스스로의 투자에 대한 책임도 조선소로서의 사명감도 거기서 보기가 어렵다. 선주도 없이 배를 덜컥덜컥 지어가는, 엔진도 확보하지 않고 용골부터 놓아 가는 중국 사람들과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보다 더 열악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엄청난 자국 수요를 업고 있고 막강한 국가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중국 보다, 세계 시장이 어려워 졌을 때 우리가 입을 타격이 훨씬 더 크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사상유례가 없이 벌써 사년 째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는 해운, 조선시장의 초 호황이 어디쯤에서 멈출 것인가 한번쯤 깊이 생각을 해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