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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구초심
  Author : 황성혁     Date : 03-12-19 16:15     Hit : 18653    
 
 

首 邱 初 心


신문에 난 조그만 기사를 읽었다. 가수라고도 하고 개그맨 행세도 하는, 나이가 들면서 그 모습이 점점 허물어져 가는 한 연예인의 말을 인용한 것이었다. "국산 영화 한편을 보았는데 너무 좋았다. 이것은 반드시 대박을 터뜨려야 한다. 만약 그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다면 나는 이민을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안목이 자기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면 대한민국 국민과 살아 주지않겠다는 말로 들렸다. 그 영화가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식을 들은적이 없지만 그가 이민을 갔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을 죽음으로 막기위해 이라크로 떠난 사람이 있었다. 인간띠를 형성해서 미군이 쏘아댈 포탄 앞에 서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첫 번째 미사일을 쏘자마자 그는 슬그머니 귀국해 버렸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그래도 소신을 뽐내며 오기로 뭉친 사람도 있구나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귀국하던 날 그는 느닷없이 한국정부에 대고 삿대질을 시작했다.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을 성토한다는 것이었다.  파병이 어디가 잘못되었다는 건지 알아 들을만한 설명도 없었다. 그리고는 이민을 가겠다고 했다. 조금 더 흥분을 하더니 국적 포기를 하고 망명을 하겠다고 했다. 참으로 우스꽝스럽기 짝이없는 짓이었지만, 구름처럼 모인 우리의 매스컴은 온갖 폭죽을 터뜨려 그를 부추겼다. 그 사람 이민 갔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더구나 그런 사람 망명 받아주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나라 20대 젊은이들의 절반이 이민을 생각한다는 통계가 있었다. 생사를 걸고 대학입시 지옥을 거치고 나서, 대학생활을 즐길 겨를도 없이, 취업이라는 절벽같이 다가오는 절망을 겪게 되고, 거기다 칠흑같이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마주할 때, 그들이 이나라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 보아야 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해 할수 있는 일이다. 이민뿐이랴. 그보다 더 극한적인 것까지 생각하는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심심찮게 들었던 것이다. 외국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시련과 고난의 크기를 생각하기 전에, 현실의 어려움이 보이지 않는 외국으로 우선 도망치고 보자는 생각을 할수도 있는 것이다. 눈앞에 닥친 어려움에 맞서서 극복해 보자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이런 젊은이들의 생명을 건 고뇌에 경망스럽게 영합하면서,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지 않으면 이민가겠다"고 까지 촐랑거려, 그들을 더 깊은 절망으로 이끌어 가는 늙은이들까지 설치고 있는 것이다.

내 친구는 이민을 갔다. 그가 의과대학에 입학했을 때 까지 그의 생활은 유복했고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육이오 전쟁중 실종되었던 그의 아버지가 북한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다는 소식이 그때 들려왔다. 그 뒤 그의 삶은 문자 그대로 지옥이었다. 그는 하숙집도 마음대로 옮길수 없었다. 종로에 있던 하숙집에서 그는 종로 경찰서 형사들과 함께 살았다. 그가 있건 없건, 시도 때도 없이 형사들이 그의 방을 들락거렸고, 그들은 그가 가진 모든 것 특히 책과 편지들을 마음대로 뒤졌고, 그와 의논 한 번 없이 그의 방에서 잠을 잤다. 원래 성격이 둥글고 참을성이 많았던 그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그것을 견뎌 내었다. 그 형사들과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대학 졸업후 필요한 과정을 거쳐 병원도 개업했고 부자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언제 였던가, 북한과 관련된 연좌죄 법률이 느슨해지고, 그에게도 여행의 자유가 주어지자, 그는 짐을 꾸렸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처분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나라를 떠났다. 그의 가슴에 첩첩이 응어리진 결코 씻어 버릴수 없었던 그 회한을 단숨에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가슴 가득히 숨을 쉬었다. 종로 경찰서 형사의, 소주와 마늘냄새나는 트림이 섞이지 않은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살수 있는 그곳에서 그의 고난은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의 한국의사 면허는 그나라로 부터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면허를 받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는 사탕가게를 차렸다. 언젠가 해외출장중 그의 동네를 방문한 내게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혁아, 나는 가나오나 똑같은 일밖에 못하는 것 같데이. 한국에서 약을 저울에 달며 일을 안했나. 여기서는 캔디를 저울에 달아 팔고 있다 말이다." 생활은 어떻게든 꾸려갈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의 삶을 괴롭힌 것은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마산 바닷가의 겟내음이었다. 종로 뒷골목의 정결하지 않은 된장찌게 냄새였다. 고향으로 부터 떠나있다는 것, 그의 가장 괴로운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같이 있을수 없다는 사실이, 종로 경찰서 형사들에게 시달리던 시절 보다 더 괴롭다는 것을 가슴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십년도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결심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돌아 오기로 한 것이다. 그가 살 수 있는 곳은 결국 고국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번 결심하자 한시도 거기서 더 견딜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세상이 바뀌어서, 거기의 모든 재산을 정리하더라도 한국에 돌아 와서 방몇개 달린 작은 아파트 하나 얻기조차 어려워졌고,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더 어려웠다. 그의 인생은 느지막히 해결하기 어려운 또하나의 처절한 고뇌를 맞고 있었다.

미국지사에 근무하던 여인이 기억난다. 그녀는 이민 이세였다. 교양있게 한국말을 하고 있었고 아름다웠고 미국의 일류대학을 나온 재원이었다. 결혼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것으로 보였는데 설흔이 넘도록 지사의 잡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덕담을 한마디 하였다. "이동네 젊은이들은 모두 눈이 먼 모양이지. 이런 재원을 아직 이렇게 살게 하는걸 보니." 그 덕담이 고마웠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눈물 한방울을 쑥 뽑아 내더니 넉두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여기 사는 괜찮은 한국남자들은 우리같은 교포 이세 여자는 사람으로 보지도 않아요. 그저 한국 가서 한국 규수를 데리고 와야 행세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요. 여기 백인 남자들이 우리를 거들떠 보나요. 잠깐 실수하는 날에는 노리개 꺼리가 되고 말지요. 운이 좋으면 괜찮은 흑인 남자나 만나 결혼하게 될지요."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런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않았다. 우리의 무책임한 이민의 뒤안길에는 그녀의 인생같은 고뇌도 있다는 것에 참담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한국에서 교육받고 그처럼 열심히 일했다면 그녀의 인생은 얼마나 따뜻하고 편안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首邱初心이란 말이있다. 여우가 죽을 때 그 머리를 고향을 향해 둔다는 뜻이다. 여우의 고향 그리움이 그러한데 사람에 있어서랴. 이민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안스럽다. 스스로의 삶이 버거울 때, 이웃들과의 세상살이가 힘들어질 때, 앞날에 대한 꿈이 사그러졌다는 생각이 들 때, 그들은 다른곳에 가면 나으려니 생각한다. 스스로의 꿈을 이루어보려 노력하기 전에, 이웃과의 삶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기전에, 먼저 눈앞의 보기 싫은 것, 하기 싫은것들을 모면하는 방편으로 이민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보지 않는 것이, 피해 버리는 것이 해결 방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견딜수 없는 한을 품고 이나라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내 친구에게 조차, 결론은 돌아 오는 것이었다. 우리 젊은 이들이 맞서고 있는 그 어려움들이 정말 극복할수 없는 것일까. 오히려 여기서 극복하지 못할 것은 새로운 곳에 가서 백배 천배 더 어려워 지는 것은 아닐까. 거기 지점에 근무하던 여사원처럼 회한의 인생이 기다릴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아야하지 않을까. 이 땅에 태어나서 이 땅에 산다는 것은 이땅이 주는 헤아릴수 없는 혜택을 누릴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젊은이들의 절망은 나이든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다. 그 자신의 절망을 젊은이들에게 덧 씌우는 경우가 많다. 경망함으로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조심하고 조심할 일이다.

우리는 무명용사들의 묘역을 나라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긴다. 국가로부터 아무것도 혜택받은 것이 없이, 그의 소중한 모든 것을 조국에 바친 사람들의 영혼이 쉬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살을 받고 뼈를 받고 영혼을 나누어 갖고, 헤아릴수 없이 많은 혜택까지 누린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일수록, 불평부터 하고 남에게 핑계를 대고 어려움을 외면하고 도망부터 치려는 경우가 많다. 바깥에 나가서 더 큰 좌절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패배주의자들의 모습이다. 이 유월에 무명용사들 앞에 나아가 향 한줌 태우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고, 자신과 조국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Best Rega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