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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혈 유감
  Author : 황성혁     Date : 04-06-22 13:18     Hit : 12885    
 
 
헌혈 유감
 
 
지난여름 어느 날이었다. 강남역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새통을 치고 있는 버스들 사이에 꼼짝도 않고 서있는 버스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헌혈을 받는 자동차였다. 나는 그 차에 올랐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바쁠 것도 없었다. 채혈하는 곳은 칸막이 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고 입구에는 두 개의 책상과 자원봉사자 같은 젊은 여인들이 한가하게 앉아 헌혈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쑥스러움을 지우느라 나는 불쑥 말을 내 뱉었다. “나도 헌혈할 수 있을까.” 그중 한 여인이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육십 오세 이하면 할 수 있어요.” 나는 기쁘게 대답하고 그녀의 책상 앞에 앉았다. “아직 2년 남았어.”

나는 헌혈에 대해서 상당한 집념을 갖고있었다. 평생 헌혈운동에 정성을 다한 나의 외우 박성태 박사를 생각해서였는지 모른다. 그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헌혈을 딱 한번 한일이 있었다. 4.19의 그 뜨거운 열기가 서울 시내곳곳에서 들끓고 있던 날 나는 시위대에 섞여서 떠다니고 있었다. 종로 어디쯤이었다고 기억한다. 서울대학 병원의 구급차가 질주하면서 마이크로 외쳐대고 있었다. “지금 피가 부족합니다. 피가 부족해서 젊은이들이 죽어갑니다. 헌혈해 주세요. 헌혈해 주세요”. 땀 투성이 인 채로 나는 그 차에 올랐고 대학 병원으로 가서 헌혈을 하였다. 그리고 내 팔에 남아있던 헌혈 자국을 나는 그 딱지가 떨어질 때까지 한 주일 동안 훈장처럼 보호하였다. 그 뒤로도 헌혈할 생각을 끊임없이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특히 지인들의 조문을 위해 병원 영안실을 찾을 때마다 기웃거려 보았지만, 병원마다 헌혈실은 다섯 시면 문을 닫아걸었다. 헌혈하기 위해서 일부러 낮 시간을 쪼갠다는 것은 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문득 내 발길에 헌혈 차가 기다리고 있었고 헌혈을 받아주겠다는 것이었다.

헌혈 실로 들어가기 전에 의자에 앉아 설문지를 채워야했다. 몇십개의 질문들이 있었다. 병을 앓은 경력, 여러 가지 질병에 대한 현재 감염여부, 몸의 온갖 이상 징후, 생활습관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질문들이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 문항들에 대답을 해나갔다. 오랫동안 해 보겠다던 헌혈을 하게되어 약간 서두르기까지 했다. 모든 문항에 문제가 없었다. 접수하는 여인과 나는 신나게 문항마다 예, 아니오를 매워나갔다. 여인도 그렇지요 그렇지요 하며 나를 부추기는 것이었다. 그 많은 질문은 완벽하게 처리되었다. 내 몸은 이상이 없었고 나의 피도 깨끗하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었다. 그리고 질문서의 제일 아래 딱하나 마지막 질문이 남아있었다. 그 여인도 전혀 문제 삼고 있지 않는 질문이었다. 그것은 “1980년에서 90년 사이에 일년이상 영국에 살았습니까” 였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답을 써넣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사람이 헌혈하는데 영국에 산 적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여인은 독촉했다. “아니오 에 동그라미 하세요.” “아니아니 나는 그때 런던에서 삼 년을 살았는걸”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그녀의 열기가 사그러 들었다. 모든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고 문제가 아닐거라고 생각했던 마지막 문에서 덜미가 잡힌 것이었다. “그럼 헌혈을 못하나” “안돼요. 그때 광우병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영국사람들은 광우병 걸린 소까지 먹었대요.” “그럼 영국사람들은 전혀 헌혈을 못한다는 건가” “그렇다나 봐요.” 나는 광우병이라는 놈 때문에 큰 잘못이나 저지른 사람처럼 몸과 마음을 움츠리고 그 차를 떠나야 했다.

광우병은 80년대 중반에 처음 발병되었으나, 80년대 초부터 그 증세가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작년 말까지 전 세계에서 153 명이, 영국에서만 143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쇠고기를 먹지 않고 살 수 없는 영국인들이 20년이 넘는 세월에 광우병으로 143명 정도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적다면 아주 적은 그 확률 때문에 광우병을 농담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병원체가 소독이나 멸균으로도 죽지 않으며 증상 발견 후 14개월 내에 모든 환자가 사망한다고 했다. 걸릴 가능성은 낮지만, 걸렸을 때의 전혀 예외가 없는 사망 확율에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는 괴질이었다.

어느 국내 작가의 칼럼에서 읽은 적이 있다. 옛날 할머니는 어린 손자가 소꼴을 먹이러 나갈 때마다 말씀하셨다는 것이었다. “깨끗한 풀만 먹여라. 밥 찌꺼기 같은 것, 더러운 것 먹이면 소가 미친다.” 소가 미치면 광우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쁜 사료에서 온다는 것을 옛날 할머니들은 이미 알고 계셨다는 걸까. 소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소의 골을 넣은 사료를 먹인 것이 광우병의 시초라고 한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재앙일 수밖에 없다. 소를 원료로 한 의약품, 화장품, 식품들도 광우병 걱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소는 제초기이며 비료 살포기라는 우스게가 있다. 풀이 웃자라지 않도록 소가 풀을 뜯어먹고, 적당한 양의 그들의 배설물로 풀의 성장을 돕기 때문이다. 소는 그렇게 자연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키워야 하는 것을, 하루라도 빨리 자라게 하느라고 온갖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키워놓고, 결국 소를 먹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은 그 부자연으로 부터 자유스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광우병뿐인가. 사스에 조류독감에 온 세상이 들썩인다. 마땅한 예방약이나 적절한 방어 장벽이 없으니 사람들이 심리적 공황에 떨 수밖에 없다. 금년에는 조류 독감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들이 도살한 닭과 오리가 육천만 마리가 넘지만, 그 병원균을 발견하지 못해 손발을 묶고 봄이 오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도 인간의 탐욕이 부른 부자연스러운 생산방식으로부터 온 재앙이다.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닭들을 가두어 두고 끊임없이 알을 낳아대도록 해서 닭들이 온전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분만이라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이다. 일년에 한 두번 자연스럽게 하는 분만도 그런데, 매일 그 고통을 되풀이해야 하니, 그 짐승들이 받는 육체적인 허약과 긴장은 어떨 것인가. 그들에게 외부로부터 오는 병원균에 대한 방어력을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한 짓으로 보인다. 자기무게 만큼의 우유를 생산하는데 4개월 정도 걸리던 젖소가, 요즈음 성장호르몬을 사용해서 3주만에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젖소의 수명이 보통 이십년 정도였던 것이 요즈음은 다섯 해도 안 되어서 도축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요즈음 부쩍 는 재해는 견디다 못한 가축들이 인간들에게 되 퍼부어 놓은 복수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인간에 탐욕에 의해 무분별하게 강요된 짐승들의 극악한 생활 환경에서 생산된 미생물들이나 세균들이 인간에 대해 대 반격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 그 끝이 어디까지일까 두렵기 짝이 없다.

내 피가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느닷없이 핏속에 광우병의 병원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먹어대던 쇠고기, 닭고기 우유 또 무수한 부자연스런 먹거리들과 내 피의 부자유스러움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좀더 자연스런 자연과의 공생을 깊이깊이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같다. 짐승이나 자연과의 관계뿐이겠는가. 하루도 쉬지 않고 이 조그만 지구를 흔들어대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테러도, 우리 인간과 인간사이에 강요되는 부자연스러운 폭압으로 형성된 인간관계가, 인간에게 되돌려 주는 통열한 업보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