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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脣 亡 齒 寒
  Author : 황성혁     Date : 04-10-14 10:14     Hit : 13305    
 
 
8월말 운송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脣  亡  齒  寒

재작년 가을 어느 날 홍콩 최대 해운회사 회장을 그의 홍콩 사무실에서 만났었다. 세계 곳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그가 내가 홍콩을 방문하던 날 요행히 홍콩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그는 놀웨이에서 가장 전통이 깊고 실적이 좋은, 간판 해운회사의 주식을 매집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날 화제의 초점이었다. “벌써 30% 넘게 매집하셨지요” 나는 물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투자 목적으로 조금 사서 모았지요. 매집이나 적대적 합병이라고 떠들어 대는 건 무리한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짓궂게 물고 늘어졌다. “놀웨이의 프레데릭슨씨가 프론트라인을 합병할 때도 단순한 투자라고, 경영권 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다고 말했었지요.”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 동안 나를 노려다 보듯 건너다 보더니, 혼자 장난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사무실이 흔들리도록 너털웃음을 웃어 대고 있었다. 그는 그 해가 가기 전, 주식시장에서 그 회사주식의 반 이상을 사 모았고, 모든 주주에 대해 매수권을 행사하였고, 대부분의 주식이 회수되었을 때 주식시장에서 상장을 철회하여 개인회사로 만들어 버렸다. 그 회사는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가스운송회사였지만, 가족관계에 있는 몇몇 젊은 대주주들이 해운업에 대해 그들의 선친들 같은 열의가 없어서, 홍콩선주가 뚫고 들어 갈 틈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놀웨이의 프레데릭슨씨가 운영하는 GOLAR LNG사가 대한해운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된 공개매수가 어느새 전체주식의 21%를 넘어 섰다. 놀웨이 출신 투자회사들이 사들인 지분까지 합치면 거의 32%의 주식이 놀웨이 사람들의 손에 들어 간 셈이 된다. GOLAR사의 친구들은 대한해운 이야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젓는다. “우리는 경영권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대한해운이 좋은 회사이기 때문에 단순히 투자를 하는 거야. 합병은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어.” 그러나 그 말을 곧이 들을 사람은 없다. 프레데릭슨씨는 세계적인 합병의 명수로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많은 VLCC를 소유하고 있던 스웨덴의 FRONTLINE사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합병한 뒤 세계 대형 유조선 시장을 일거에 장악하였다. GOLAR LNG사도 연전 그의 엄청난 자금력으로 OSPREY사를 합병하여 설립한 LNG 수송 전문회사이다. LNG 시장의 장래가 불확실 할 때 그는 투자를 시작했다. 사용할 곳이 정해지기도 전에, 그 비싼 LNG선을 여러 척 발주해 놓고 있는 그들에게, 대한해운은 가장 이상적인 합병의 대상일수 밖에 없다. 한국가스공사와 안정적인 LNG 수송계약을 맺고 있는 대한해운의 업무를 인계 받을 수 있다면, 비교적 외국 선사에 배타적인 가스공사 업무에 접근이 용이해지는 것이다. 대한해운은 선박중의 노른자위라 할 수 있는 15만-20만 톤 급 벌커를 열 척 가까이 갖고 있어, 이 호황에 벌어들이는 엄청난 이익은 GOLAR 같은 회사가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대한해운은 그룹 사에 속해 있지도 않고, 경영을 간섭할 채권단도 없는, 어디에도 메인 데가 없는 완전히 독립된 해운전업회사라는 것이 더욱 구미를 돋우는 것이다.

GOLAR사는 FRONTLINE이나 OSPREY를 인수할 때 했듯이,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하면 어느 때고 밀고 들어올 능력이 있고 상대를 장악할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는 프로들이다. 주식시장을 알고 그를 통해 가능성 있는 상대는 확실히 흡수해 버리는 방법을 갖춘 사람들이다. 아마츄어적인 막연한 기대로는 막아 낼 수 없다. 대한해운이 확보하고 있는 우호지분 35% 미만으로는 경영권을 확보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불안해 보인다. 대한해운은 설립이래 무수한 폭풍우와 암초들을 이겨내고 이제 순풍에 들어 섰다는 느낌을 주나, 외국자본이 노리기에는 지금이 가장 적기일 것 같다. 가장 적은 투자로 가장 알찬 결실을 거둘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년 현대상선의 자동차 운반선 선단 60여 척이 스칸디나비아 선주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처다만 보았다. 그때 현대자동차가 조금만 협조적인 자세를 보였다면, 혹은 관련기관이 조금만 도와주었다면, 이익이 확보된 그런 대규모의 선단은 자국선으로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막대한 자동차 수출에 대한 수송권을 그 거칠고 인정머리 없는 외국인 수송회사가 쥐게 되었고, 그들의 전횡이 바로 자동차 업계에 대한 불이익으로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진땀이 난다.
대한해운과 GOLAR와의 싸움은 대한해운의 운명에만 관련된 일이 아니다. 한국 해운의 장래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웃이 편안하게 도움을 주고 있을 때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잊는다. 그러나 그들이 자칫 우리 곁을 떠났을 때에야 그 공백을 메우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우리쪽 프로들의 선전을 기대한다.